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아 테레사(스페인) (문단 편집) === 초기 === 마리아 테레사의 외조부모는 [[앙리 4세]][* 앙리 4세의 첫번째 부인은 [[카트린 드 메디시스]]의 딸이자 여왕 마고의 주인공인 [[마르그리트 드 발루아|마르그리트 공주]]이다.]와 [[마리 드 메디시스]]이다. 어머니 엘리자베트는 제법 미인인데 마리아 테레사는 스페인 왕실 일원들의 외모가 근친혼으로 인해 하도 농축되어 모계 유전자는 기를 못 펴고 발현이 안 된 듯 미모가 떨어진다. 실제로 마리아 테레사는 근친혼의 영향인지 아닌지 몰라도 약간 둔했다고 하며, 이복 형제 중 하나인 [[카를로스 2세]]는 근친혼 결과물의 끝판왕이기도 하다. 동복형제 중 살아남은 것은 오빠 발타사르 카를로스 하나뿐이다. 어머니 엘리자베트는 그녀가 겨우 6살 때 사망했다. 이후 동복오빠이자 유일한 후계자인 발타사르도 사촌인 오스트리아의 여대공 마리아 안나[* 이후 스페인식으로 마리아나로 불린다.]와 결혼을 앞두고 10대의 나이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. [[펠리페 4세]]는 남성 후계자 없이 마리아 테레사만 남게 되자 재혼을 서두르는데, 상대는 아들 발타사르의 약혼녀였고 자기 조카딸인 오스트리아의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Mariana_of_Austria?wprov=sfla1|마리아 안나]](스페인식 이름은 마리아나)였다! 마리아 테레사는 자신의 새어머니가 된 사촌 언니와의 나이 차이가 겨우 2살밖에 나지 않았고, 마리아나 또한 어렸기 때문에 의붓딸인 마리아 테레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다고 한다.[* 여담으로 두 사람의 초상화는 거의 한 사람 같이 흡사하게 닮았다.] 여기다 펠리페도 마리아나를 아내보다는 어린 조카, 딸 마리아 테레사와 놀아줄 친구 정도로 생각해서 한동안 다소 총체적 난국이었다. 스페인 왕실은 살리카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마리아 테레사는 친오빠가 죽고 이후 새어머니가 이복 남동생 [[:파일:1663429316799.jpg|펠리페 프로스페로]] 왕자를 낳기 전까지 11년간 스페인의 추정 왕위 계승자의 지위를 가졌다. 이후 마리아 테레사는 자신에게 이중으로 사촌이 되는[* 외사촌인 동시에 고종사촌이다.] [[루이 14세]](외삼촌 [[루이 13세]]와 고모 안나의 아들)와 [[1660년]] 결혼했다.[* 원래 마리아 테레사는 페르디난트 4세와 결혼이 예정되어 있었지만, 페르디난트 4세가 죽으면서 파기되고 루이 14세와 혼인했다. ] 그러나 스페인은 비리비리한 남성 후계자들 때문에 혹여나 프랑스로 시집간 마리아 테레사에게 스페인 왕위 계승권이 넘어가고 프랑스가 스페인을 차지할 것을 우려해, 마리아 테레사가 계승권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엄청난 금액의 [[지참금]]을 책정했지만 이미 스페인의 재정 상태를 꿰고 있던 프랑스는 이 지참금을 다 못 줄 거라고 내다보고 있었다. 결국 마리아 테레사의 이복 남동생이자 스페인-합스부르크의 마지막 왕 [[카를로스 2세]]가 후사없이 죽자 이 지참금을 못 받았다는 구실로 마리아 테레사의 손자들을 통해 부르봉 왕가가 스페인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는 명분이 된다. 물론 지참금을 다 줬어도 루이 14세의 야심을 고려했을시 똑같이 계승권을 주장했을 것이다. 단지 프랑스에게 좋은 명분을 주었을 뿐. 새어머니이자 사촌 언니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는 마리아 테레사가 13살 때 [[마르가리타 테레사]]라는 첫딸을 낳았는데, 마리아 테레사에게 이복 여동생이 되는 마르가리타는 펠리페 4세가 가장 사랑했다고 알려진 딸이다. 그리고 유명 화가 [[디에고 벨라스케스]]가 그린 그 [[:파일:디에고 벨라스케스 Las Meninas-시녀들.jpg|라스 메니나스(시녀들)]]의 주인공이기도 하다. 벨라스케스의 초상화 모델로 연이어 등장해 유명해진 마르가리타는 [[신성 로마 제국]]의 황제 [[레오폴트 1세]]와 결혼했으나 21세의 나이로 요절했다. [[파일:La infanta María Teresa de España.jpg|width=400]] [[디에고 벨라스케스]]가 그린 마리 테레즈의 초상화. 초상화 속 저 패션은 이미 당대 유럽에서 구닥다리 패션으로 악명 높았다. 마리아 테레사는 처음 시집갔을 때 프랑스 궁정에서 꽤나 비웃음을 샀다고 한다.[*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르가리타 공주의 어머니 오스트리아의 마리안나의 초상화를 보면 드레스며 헤어스타일이 비슷하다. 적어도 한 세대 전 유행이었다는 소리. 다만 마르가리타의 어렸을 때 초상화에서도 [[:파일:1660년 9살 때의 마르가리타 테레사.jpg|비슷한 패션]]이 나오는걸로 보아 본인의 문제라기보단 그냥 스페인 왕실이 유행에 뒤쳐졌던 모양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